박정원이 말하는 박정원

*무대에서 관객을 웃고 울리는 배우들부터 미래의 예비스타까지 서정준 객원기자가 현장에서 직접 만난 이들을 알아보는 인터뷰 코너 '서정준의 원픽'입니다.
[서정준의 원픽] 진실함을 담은 배우 박정원을 만나다.
지난 6일 오후 대학로 한 카페에서 뮤지컬 '테레즈 라캥'에 출연한 박정원을 만났다. 오는 9월 1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 2관에서 공연되는 '테레즈 라캥'은 영화 '박쥐'의 원작으로 유명한 동명의 소설을 무대화한 작품이다. 어릴 때부터 이어진 관계인 카미유와 애정 없는 결혼을 한 테레즈가 카미유의 소꿉친구 로랑을 만나며 벌어지는 파국을 그린 내용으로 테레즈 역에 정인지, 나하나, 강채영, 로랑 역에 고상호, 백형훈, 노윤, 카미유 역에 박정원, 최석진, 박준휘, 라캥부인 역에 오진영, 최현선이 출연한다.
배우 박정원은 '여신님이 보고 계셔', '정글라이프', '완득이', '바람직한 청소년' 등 젊은 청춘의 모습부터 '아들', '어린왕자' 등의 감수성이 담긴 작품, '홀연했던 사나이', '찌질의 역사' 같은 재치있고 트렌디한 공연, '보도지침', '태일' 등에서 보여준 진실한 목소리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작품의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 나이나 경력에 비해 여전히 어려보이는 외모는 사람들이 그를 오해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오해를 넘어 박정원은 자신이 걷고 싶은 길을 걸어왔다.
인터뷰 내내 그는 정말로 솔직했다. 그의 답변에는 어떤 이야기를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을 넘어 마음에서 느끼는 진솔한 감정이 묻어나왔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저는 무대 위에서 위로받고 위로하는 배우가 되고 싶은 박정원입니다.
인터뷰하기 전 박정원이란 사람이 무척 궁금했어요. 젊은 학생, 어리고 순수한 느낌의 역할을 많이 하면서도 '보도지침'이나 '태일'에서 목소리를 내는 역도 마다하지 않았죠. 어느 쪽이 더 본래의 박정원에 가까울까 궁금했어요.
그 두 이미지가 점점 교차되는 것 같아요. 남들이 생각하는 제 이미지에 맞춰져지고 제 쪽에서도 그 이미지에 다가가고요. 본격적으로 배우 시작하기 전엔 말도 없었고 호불호가 완전 갈리는 편이었어요. 통통 튀거나 부정적인 사람으로 봐주셨죠. 제가 생각하는 저는 원래 세상에 반항적이고, 목소리를 내고 싶은 후자 쪽이었는데 무대에서 점점 밝고 어린 역을 많이 하면서 점점 교집합이 되가는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저는 어릴 때부터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 그런 비판을 안해도 되는데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옷도 좀 특이하게 입는 게 그런데서 온 것 같아요. 실제의 저는 무척 평범하지만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죠. 남들한텐 상남자처럼 보이고 싶지만 사실 여리기도 하고.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럼 근황 토크로 넘어가겠습니다. 요즘 뭐하면서 지내고 계신가요.
뮤지컬 '테레즈 라캥'을 아주 재밌게 하고 있어요. 어제 '세종, 1446' 첫 상견례 했어요. 했던 사람도 많고 새로운 사람도 많아서 시너지가 어떨지 궁금하더라구요. 그리고 요즘 넷플릭스에 빠졌어요. 너무 재밌더라구요. 집돌이가 되는 첫 단계 같아요. 독립한지 얼마 안돼서 집에서 요리도 좀 해보고요. 두 달 됐는데 좋지만, 가끔 외로워지기도 해요.
뮤지컬 '테레즈 라캥'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배우 박정원이 보는 카미유는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요.
엄마 손에 자란 마마보이에요. 어릴 때부터 아프고 의지하고 기댈 곳이 엄마랑 테레즈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사회성도 없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 말하는 방식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 서툰 사람이에요. 그래서 테레즈에게 사랑을 전할 때도 진심이 담겨있지만, 누가 들었을 땐 사랑한다는 말인지 모를 정도죠. 어린아이에 머무른 인물이죠. 카미유는 엄마 품에서 자라고 엄마 때문에, 엄마가 나를 그렇게 키우고 싶어하니 내가 그렇게 컸다 생각하는 자격지심이 많은 아이에요.
저는 그런 젊은 시절, '중2병' 걸린 학창시절의 우리를 보는 느낌도 들었어요(웃음).
지금 보면 사실 청소년기에 뭔가 반항적이거나 특별해보이고 싶은 것도 그들이 사는 방식이잖아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수 없을 것 같으니까 그렇게 하죠. 누군가는 타협하며 살아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반항하며 살아가기도 하고요. 그게 카미유의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싶어요.

원작이 있지만 많이 변화된 캐릭터기도 해요. 카미유가 만들어진 과정이 궁금하네요. 원작을 보며 참고한 지점이 있나요.
카미유가 빨리 죽고 입체적인 면이 적은, 단편적인 인물이잖아요. 작가님이 카미유에 대해 애정이 좀 있으셨대요. 그래서 원작의 인물을 어떻게 무대에서 좀 살릴 수 있을까 싶어서 분량도 좀 늘어났고요. 저는 늘 원작이 있는 작품에선 그런 게(원작을 읽고 참고하는 게) 조심스러워요.
'어린왕자', '붉은 정원' 등 원작이 있는 작품을 했는데 원작을 보는 게 배우로서 제 배역에 도움이 되거나 방해가 되기도 해요. '테레즈 라캥'은 사실 좀 원작과 달라서 어려웠어요. '어린왕자'는 원작과 완전히 똑같았다면 '테레즈 라캥'은 오히려 원작을 읽다보면 캐릭터에 대한 생각이 좁혀질 것 같아서 대본에 집중하려고 했죠. 이번에 좀 재밌었던 작업이 카미유는 대사가 많이 없어요. 그리고 카미유가 내뱉는 대사들이 상대 인물에게 영향력을 주지 못해요. 겉으로 잘 전해지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런 상황 속에서 겉으론 전해지지 않는 대사들이 내면에서 어떻게 영향력을 줄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작품을 보고 카미유는 변화무쌍한 느낌이 들었어요. 연출이나 배우의 의도에 따라서 엄청 배리에이션이 풍부한 캐릭터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죠.
저는 그래서 이게 모 아니면 도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어떻게 하냐에 따라 관객들이 보기엔 입체적일수도 정말 평면적일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 부분을 고민했죠.
그래서 원래 제 연기스타일도 그런데 신체적인 면을 강조해봤어요. 예를 들면 '노틀담의 꼽추'에서 꼽추도 실제로 굽어진 등을 갖고 연기하는 배우를 보면 엄청 임팩트 있잖아요. 그래서 카미유도 구부정한 자세에 초점도 불안하게 했어요. 대사 외적인 부분을 그렇게 변화시켰더니 처음엔 평범하게 연기했던 것도 나중에는 말하는 태도 자체가 히스테릭해졌죠. 대사 분량이 적다보니 이걸 이렇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갈 수 있겠다 싶었죠. 그렇다면 '사랑해'라는 말도 카미유의 안에서는 진심이지만 바라보는 상대는 비호감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그런 식으로 생각했어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카미유를 풀어가는 방식도 다양할 수 있듯이, 창작 초연인 뮤지컬 '테레즈 라캥' 역시 여러 방향으로 풀어갈 수 있었을 거에요. 지금은 집으로 꽉 채운 무대를 기반으로 강한 심리묘사가 인상적인 작품이 됐어요. 집이 극에서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됐죠.
제가 무대 연출을 하지 않았지만(웃음), 집에 집중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저는 그 집을 계속 보면서 네 명의 인물이 우물 안 개구리같다고 느꼈어요. 그 안의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개구리처럼 네 명도 집이 전부라고 생각했고요.
연습할 땐 2층 구조의 집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연습했나요. 6구역으로 나뉘어진 무대를 실제 만났을 때 느낀 감정도 궁금합니다.
연습실에 2층 구조는 아니지만 침대가 있어서 카미유들은 거의 누워있었어요. 쉬는 시간 되면 다른 배우들도 침대로 모여들고요(웃음). 연습할 땐 무대에 있을 때랑은 좀 달랐죠. 정확히 구역이 분리돼있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좀 힘들었지만 상대배우들이 집중도 잘해주고 서로가 잘해서 좋았죠.
거의 모든 공연이 다 그런 것 같아요. 배우에게 무대라는 게 도움을 정말 많이 주거든요. 그 배경, 분위기 같은 게 와닿잖아요. 극장에 갔더니 엄마와 나와의 관계가 더 보이는 느낌이었고, 로랑에게 '우리 집이야'라며 자랑했을 때도 구체적으로 집이 보이니까 대사톤 같은 것도 연습할 때와 좀 더 바뀌고요. 로랑 역시 제게 '얼마나 멋져. 이런 아름다운 집에서 두 분과 살고 있잖아'라며 말을 건네는데 그때도 느껴지는 게 달랐죠.

무대만큼 중요한 게 또 관객이죠. 극장에서 관객들과 함께하는 소감은 어떤가요.
'테레즈 라캥'뿐만 아니라 모든 공연에서 관객을 만나는 건 재밌고 행복한 것 같아요. 그런데 지인이나 관객분들도 '테레즈 라캥'을 무척 무섭게 보시더라구요. 집이 주는 분위기나 배우들의 연기. 음향 등이 분위기 있죠. 저도 봤는데 무섭다기보다 스산한 분위기가 배어있어서 너무 좋더라구요. 스산함을 목적으로 그렇게 하려한 건 아니지만 그걸 관객들이 느껴주시니 좋고요. '테레즈 라캥'은 현장에서의 관객들의 피드백이 많은 작품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만큼 엄청나게 집중해서 봐주시는데 그게 느껴져서 저희도 더 집중하게 돼요.
살짝 쉬어갈게요. '테레즈 라캥'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뭘까요.
하우스워밍 파티 때도 했지만 테레즈가 부르는 2번 넘버, '어제 그리고 오늘'이란 노래에요.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테레즈의 모든 게, 복잡미묘한 감정이 느껴져요. 하나만 없어요. 자유스러움만 없죠. 자유스럽지 못한 아이가 혼란하고 슬프고 내 스스로 위로하고 그런 복잡미묘한 감정이 느껴지는 노래라서, 테레즈의 말에 집중하다보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사실 언제나 누가 좋아하는 넘버 물어보면 제 노래를 꼽은 적이 거의 없어요. 남의 떡이 커보이나봐요(웃음)

'테레즈 라캥'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요.
물론 작품 선택하는 기준이 대본도 있지만 같이 하는 창작진과 배우를 1순위로 꼽아요. 어떤 배우나 창작진을 두고 좋고 나쁘다고 평가할 순 없지만, 같이 하는 배우들이 제 기준에서 정말 같이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어떤 작품이라도 재밌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또 카미유라는 역할이 제겐 도전아닌 도전이었어요. 병약하고 히스테릭한 캐릭터를 했었지만, 카미유는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거든요. 비슷한 결이지만 다른 세상이 있는 역할이어서 좀 도전 아닌 도전을 하려고 했어요. 항상 멋있는 것만 하고 싶진 않더라구요(웃음). 보통 제안해주시는 배역 중에 어느정도 잘생긴 역할도 있었는데(웃음) 카미유도 오히려 더 촌스럽게 하고 싶었어요. 예를 들면 오대오로 가르마를 만든다거나. 제게는 카미유가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드리고 싶은 도전의 연장선상이었어요.
마지막으로 뮤지컬 '테레즈 라캥'을 예매해야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일단 모든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지만 저희 작품의 배우들이 정말 연기를 잘해요(웃음). 그리고 네 배우의 시너지가 좋아요. 극의 분위기가 팀 분위기랑 연결되기도 하는데 저희 팀의 분위기가 좋으니 극의 분위기에 전달돼서 관객분들도 그런걸 느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원작도 너무 좋으니 공연이 좋을 수밖에 없지 않나 싶고요. 창작 초연이지만 이정도 나온 건 선방했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NC인터뷰②]'테레즈 라캥' 박정원 "내 연기의 모토는 위로"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