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박정원 인터뷰

[뉴스컬처 김진선 기자] "누나 손, 한번 꼭 잡아 주고 싶어요."

배우 박정원이 빈센트를 위해 희생을 감수한 인물 테오가 됐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그리는 작품이다. 빈센트가 세상을 떠난 후, 그를 기억하기 위해 유작전을 열기 위해 전시회 관장을 만나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함께 시간 여행을 떠난다. 선우정아가 작곡한 풍성한 넘버, 3D 맵핑 기술을 더해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화부터, 그의 다양한 작품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형 빈센트를 위해 희생했음에도 테오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조금 더, 그를 지원해주지 못했던 미안함이 남았을 것이다.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가족과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쏟아낸 테오의 삶. 빈센트의 그림이 더욱 가치있게 느껴지는 건, 빈센트의 삶과 고민 뿐이 아니라, 테오의 인생이 담겼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이 테오의 감정에, 박정원은 자신의 친누나를 떠올렸다. 그는 "누나의 손을 꼬옥, 잡아주고 싶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정원이라는 이 배우가 더 빛나는 이유는 그를 사랑하는 그의 가족들과 친구 등 '소중한 존재' 덕분일지도. 소중한 존재들이 끼친 '따듯한 영향'이, 무대 위 배우 박정원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박정원에게서, 그 '따듯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치열하게 예술 활동을 펼친 빈센트와, 그의 뒤에서 묵묵하게 그를 지원하고 기다려 준 테오. 배우 박정원은 빈센트와 테오, 둘 중 어느 인물에 더 가까울까.

빈센트처럼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아니지만, 무대에서 감정을 담아내고 표출하는 배우의 삶은 분명 맞닿아 있다. 박정원은 일상에서 어떤 부분에서 감정을 만끽하고, 감성을 채울까.

"다른 사람의 삶에서 많이 느껴요. 꼭 무대가 아니더라요. '국경없는 포차' 덴마크 편에 세계 각국으로 요트를 타는 젊은이들이 나왔는데, 그들을 보고 안정환 씨가 '왜 난 젊었을 때 그러지 못했을까'라고 하더라고요. 스스로 저에게 '아직 늦지 않았어'라고 했어요. 공연을 하면서 두렵거나, 무서운 부분이 있어도. '젊잖아! 너의 마음을 펼쳐 보는 건 어때?'라고요."

그러면서 박정원은 음악극 '태일'을 떠올렸다. 너무 좋아하는 작품이기에, 꼭 다시 만나고싶은 바람을 담았다.

'태일'이라는 작품을 너무 좋아해요. 정말 감명 깊은 작품이에요. 그렇게 좋은 작품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에요."

무대를 향한 박정원의 진심이 느껴졌다. "무대가 그렇게 좋느냐"는 물음에 박정원은 "감사한 마음"이라고 답하며 미소지었다.

"좋은 극장과 환경에서 작품을 하고 있잖아요. 제가 바라고, 꿈꿔왔던 모습이에요. 좋은 사람들 만나고, 좋은 작품으로 이뤄졌고요. '대스타'가 된 것도 아니고, 바라지도 않아요. 그저 감사한 마음이에요. 고정수입도 없었는데, 이렇게 꾸준히 무대에 오르잖아요. 오히려 무대에 오르지 않으면 불안해요."

그러면서 박정원은 함께 살고 있는 애견 봄이를 언급했다. 유기견으로 처음 집에 왔을 때, 식탐이 굉장했던 봄이가, 함께 생활을 하면서 식탐이 줄어들고 안정을 찾게 됐다는것. 박정원 역시, 작품을 향한 갈증이 너무 깊어서, 작품에 꾸준히 오르고 싶고, 좋은 작품은 자신의 땀을 담아서라도 관객들에게 보이고 싶다는 바람이다.

"SNS에서 봤는데, 바라보기 쉽지 않은 광경?에 대한 거였어요. 그 중 하나가 무대에서 바라본 객석 모습이었어요. 무대에 계속 오르니까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했어요. 집에 가듯, 소대 나오면 객석이 바로 보이는 그 장면이 어느 순간 그렇게 된 거예요. 하지만 처음 객석을 바라봤던 그 '경의로움'은 절대 잊혀지지 않아요. 학교 때부터 공연을 했지만, 당연하지 않은 곳이었어요."

무대에 오르는 게 당연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이, 쉴새 없이 꾸준히 무대에 오르는 박정원이지만, 그는 객석을 바라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 그 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2014년 '완득이'로 무대에 오른 것을 떠올린 박정원. 당시 대극장 경험이 많지 않았던 그에게 2000석이 넘는 객석은, 너무나 벅찬 감정을 불러일으켰다고.

"무대에서 3층까지 의자들이 나열돼 있는데, 너무 아름답더라고요. 관객들이 꽉 채우고 있는 객석을 보는 것으로 너무 감사했어요. 누구에게나 익숙한 회사지만, 누구한테는 낯설 수 있잖아요. 그런 곳에서 자극을 받아요."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인물을 향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소문일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박정원은 "아쉽다"라고 했다.

"프랑스 아를에 간 적 있어요.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인물을 더 잘 알고 갔으면 좋았을텐데 아쉽죠. 해바라기 노란집은 이야기만 알고 갔는데도 너무 아름답더라고요. 낮이긴 하지만, '밤의 카페테라스' 장소도 갔거든요. 너무 좋더라고요."

작품을 통해 박정원이 빈센트라는 인물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너무나 처절했어요. 그림과 예술을 위해서 처절하고 치열하게 살았어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공감하는 순간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공감이 안되면 이해를 할 수 없지요. 빈센트라는 인물을 바라보고, 테오를 마주하고 좀 이해하게 됐지만 표현은 쉽지 않았어요."

'빈센트 반 고흐'를 하면서 박정원의 마음도 달라졌을 터. 인물의 감정에 다가가기도 쉽지 않지만, 표현 역시 쉽지 않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박정원은 테오의 감정에 다가가면서, 자신을 위해 희생을 한 누나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지금은 이름을 알린 배우가 됐지만,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데에는 누나의 마음이 컸다고 말이다.

"누나요? 사실 제가 좀 무뚝뚝해요. 다른 남동생들은 같이 걸어다니면 손도 잡아준다고 하던데, 그런 누나 말에 '무슨, 손이야!'했는데..요즘엔 손 한 번 잡아주고 싶어요. 막상 잘 안될 수도 있지만요(웃음). 어머니께도 사랑한다는 마음 표현 잘 못했는데, 요즘 혼자 살면서 가족을 향한 마음이 더 애틋해졌어요."

빈센트가 빈 캔버스에 물감과 붓으로 그림을 완성하는 것처럼. 박정원에게 캔버스가 주어진다면 어떤 그림을 그릴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관객들과 작품을 만드는 창작진들을 향한 고마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피아노, 미술 다 시키셨어요. 전 혼자 생각에 제가 그림 좀 그린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웃음). 자화상을 그릴 거 같아요. 아니면, 저만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그리고 싶어요. 그 세상이 저를 만들어준다는 생각이에요. 창작진, 제작사, 관객들이 절 만들어준 거니까요. 저만 없는 세상을 그려도, 그 그림이 저를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들 거 같아요."

5년 째 무대에 오르며 뜨거운 박수를 받는 '빈센트 반 고흐'. 박정원이 생각하는 작품의 매력은 무엇일까.

"가족애 아닐까요. 작품이 워낙 탄탄하고 좋기도 하고, 명화들이 펼쳐지고, 3D맵핑 기술로 볼거리를 더했잖아요. 진짜 빈센트의 그림이 아니지만, 배우들의 감성과 열연이 더해져 마치 진짜 빈센트의 그림을 마주한 진풍경을 느낄 수 있어요."

제목이 '빈센트 반 고흐'고, 빈센트의 삶을 아우르는 작품인만큼, 앞으로 빈센트로 오르는 박정원의 모습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테오와 다른, 또 다른 빈센트를 완성해낼 그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테오도 좋지만, 욕심과 고집이 있는 빈센트 역도 해보고는 싶어요. '프롬 빈센트' 너무 좋아해요. 빈센트의 마음이 다 담겨있는 거 같아서요. '밖에서 들어오는 고소한 냄새'라는 가사 있잖아요. 얼마나 배고팠으면 그럴까요? 빵 대신에 물감을 샀다는 대사도 있잖아요. 얼마나 배고프고 힘들었을까, 마음이 닿아요."

빈센트의 삶에 테오가 없었다면, 지금의 수많은 작품들을 만나지 못했을 수 있다. 깜깜한 밤하늘을 지키고 있는 달이, 태양의 에너지가 없으면 빛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박정원이 무대에서 조연이라도, 빛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태양처럼 어디서나 에너지를 발산하기 때문 아닐까.

"관객분들이 절 사랑하는 이유가 있다면 제가 주연을 빛나게 해줘서가 아닐까 싶어요. 조연으로 빛나는 것도 좋지만, 받쳐주고 같이 빛나는 조연이 되고 싶어요."

'빈센트 반 고흐'는 3월 1일까지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에서 공연된다.